<1146호> 의명학교 출신 애국지사 허연, 새롭게 조명
기자 : 재림신문사 날짜 : 2021-03-03 (수) 15:13
의명학교 출신 애국지사 허연, 새롭게 조명

김영식 작가 통해 독립운동 발자취 알려져





3·1운동 적극 참여 후 망명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옥고

안창호 선생과 흥사단 활동

3·1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는 등 독립운동의 중심에 섰던 재림성도 허연 선생이 최근 새롭게 조명됐다.
망우리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역사적 인물 58인의 이야기를 엮어 주목 받았던 ‘그와 나 사이를 걷다’(김영식)의 후속작인 ‘망우리 언덕의 십자가’가 2월 24일 발간됐다. 기독교 인물 24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에 순안의명학교 출신의 애국지사 허연 선생의 이야기가 담겼다.
‘재림교 순안의명학교 출신의 교육가’로 허연 선생을 소개한 김영식 작가는 이제까지 허연 선생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3·1운동 당시 체포되지 않고 망명길에 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책에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문을 돌리며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허연은 경찰의 체포를 피해 순안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의명학교 스승 김창세로부터 상해삼육대학 입학 추천장을 받아들고 몇 개월을 걸어서 상해로 망명했다”고 기록했다.
허연 선생은 13세 때인 1908년 순안병원(현 삼육서울병원)에 숙식을 제공받는 급사로 들어가며 재림교회와 연을 맺었다. 이후 순안병원장인 러셀 박사의 주선으로 20세의 늦은 나이에 순안의명학교에 들어가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허연 선생은 현재 망우리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 흥사단 활동을 함께 하며 존경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 때문이었다. 



애국지사 허연 선생은 누구?

순안병원 통해 재림교회와 연 맺어


허연 선생은 1896년 평안남도 순안군에서 태어났다. 외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13세 때인 1908년 순안병원(현 삼육서울병원)에 숙식을 제공받는 급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순안병원장인 러셀 박사의 주선으로 20세에 순안의명학교에 들어가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김영식 작가는 ‘망우리 언덕의 십자가’ 중 허연 선생 편에서 순안병원이 후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는 과정을 설명하며 “청량리 지역에는 재림교 한국본부와 출판사 시조사, 삼육서울병원이 모여 있어, 한국 재림교의 발상지는 순안이고 중흥지는 청량리 지역이라 할 수 있다”고 썼다. 
1919년 3·1운동 때 순안에서는 3월 6일 의명학교 교사와 학생의 주도로 500여명이 만세운동에 가담했다. 허연 선생은 독립선언문을 돌리며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의 체포를 피해 순안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의명학교 스승 김창세로부터 상해삼육대학 입학 추천장을 받아들고 수개월을 걸어서 상해로 망명했다. 그리고 상해삼육대학 중학부에 들어가 1922년에 졸업했다.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은 1921년 12월 13일, 3·1예배당에서 열린 상해유학생회(留滬學生會)의 모임을 소개하며 허연, 주요섭, 박헌영의 연설 소식을 실었다. 허연 선생은 이 활동을 통해 상해임시정부의 우사 김규식과 인연을 맺었다.
1922년 귀국 후에 연희전문에서 수학하다가 1924년 8월 24일 미국 버니지아주의 로녹대학(Roanoke College)에 들어가기 위해 경성을 떠났다. 그가 로녹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것은 김규식 박사가 자신의 모교인 로녹대학에 추천장과 함께 여비를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허연 선생의 3남인 허달 씨가 로녹대학에서 2001년에 입수한 부친의 학적부엔 재정보증인으로 상해에 주소를 둔 김 박사의 이름이 적혀 있다. 유학을 떠나기 전에 일경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김 박사는 본래 이름인 허용성을 허연으로 개명하라고 조언했다. 미국에서는 영문 이름을 ‘벤자민(Benjamin Yun Hugh)’으로 했는데, 러셀 박사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과 같은 인물이 되라고 지어준 까닭이다.
1933년 2월 귀국 후 협성실업학교(현 광신고)의 교사로 일하며 동아일보 등에 경제 관련 글을 다수 기고했으며, 라디오 경제해설 등으로 민족계몽에 나섰고 1937년에 중앙고등학원(대학)을 설립하고 운영했다. 1937년 6월 10일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누하동 자택에서 긴급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8월 10일 수감되고 1938년 7월 29일 보석으로 출감했다.
허연 선생은 1946년부터 조선대화방직(주)의 전무이사로 일하다가 일제 때 옥고의 후유증으로 폐렴에 걸려 1949년 병석에 누웠다. 늘 가족과 친지에게 “도산 선생의 발치에 묻어 달라”고 해 망우리에 가족묘지를 마련하고 그 해 8월 12일 향년 53세로 별세했다. 

권태건 aux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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